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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 때, 통진당 선거전단에서 김재연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랬었다.

 

김재연씨는 내가 외대에서 여학생위원회를 할 때, 총학생회장이었다.

김재연씨는 외대 학생들, 외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등을 거치지 않고 한총련 의장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었다.

전학대회에서는 외대 학우들의 의견을 묻지않고, 의장선거에 출마한 과정이 비민주적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재연씨는 전학대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받아줄 것을 호소하였고,

당시 다수였던 남학생 과대표 등은 '(예쁜) 여자의 눈물'에 어쩔줄 몰라했고,

몇몇 여학생 대표들은 '여자의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흠, 이쁘면 단가... ㅎㅎㅎㅎㅎㅎ

결국 그녀는 총학과 의장을 완수했다. 

 

총선이 끝나고, 그녀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배가 심하게 아팠다.

당시 외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민주노총으로 옮겨가 파업사업장 지원 일을 하던

윤정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는 과로로 사망했고, 장례식장에서 몸부림치며 울던 남동생도 생각났다.

그런 사람이 많은데! 소리없이 묵묵히 현장에서 운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저 사람인가? 시기심에 더해서 배알이 꼴려왔다.

 

이번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를 보면서,

"내 그럴 줄 았았다. 꼬시다"는 심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손수조니, 이준석이니, 한나라당이 미모와 스펙으로 인물들을 키우는 것처럼,

진보진영도 미모와 스펙으로 인물들을 키우는가 싶어서

여기저기 외모지상주의 쩌는 모습에, 경악하기도 했다. (나도 외모지상주의 쩔기 때문에 김재연에게 시기심이 일어난 것이다!)

 

종북세력이 뭔지도 모르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김재연씨는 그때도 지금도 권력있는 번드르르한 자리에 고속승진하다가 한방에 훅 간 것으로 보인다.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한 셈?

 

그녀가 '외대사태'때 과정의 민주주의에 대한 숙고를 거쳐 책임을 졌으면,

지금과 같이 더 큰 바닥에서 비슷한 사태를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선거가, 대학교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로 이어지고 

집 안에서의 민주주의가, 집 밖에서의 민주주의로 연결된다.

 

작은 것 부터 잘하자. Go back to Basic!

 

 

 

Posted by gaon1981 트랙백 0 : 댓글 1

저녁즈음에 제네바에서 같이 지냈던 xx이와 연락을 해서 그런지, 장을 보고 혼자 저녁을 차리는 어스름이 같아서 그런지 제네바의 기억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살아온다.

 

제네바시내, Monor 백화점 앞에서 9번 버스를 타면 xx이가 묵었던 기숙사로 갔다. 그 길 중간에 한인교회가 있었다.

 

이후 2달 동안 가장 싼 방을 구해서 프랑스 국경지역에서 지냈다. 별 다른 할일이 없으므로 나는 긴 조깅을 했다.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들곤했다. 그 조깅 길위에 꽃들이, 그리고 산꼭대기만 허옇게 떠있던 몽블랑 산과 밀밭 뒤로 지던 새빨란 노을이 어제 일인듯 그려진다.

 

해바라기밭 옆 길을 뛰었고, 말똥 냄세나는 축사옆을 지나쳤다. 때로 길의 방향을 달리해서 모르는 동네로도 들어가보았다. 그 한적인 시골 동네의 밭에는 호박이 심겨져 있었는데, 할로윈때 써도 될만큼 아주 컸다.

 

나는 최소생계비 일부만 남기고 9월에 있을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고 스위스의 끝에 있는 작은 도시 Basel로 갔다. 기차는 레만 호수를 따라 달렸고, 그 풍광이 아름다워서 UNESCO 세계 유산으로 등제되었다는 포도밭을 지나갔다. 난 창문에 코를 박고 창문을 뚫고 나갈듯 유리창에 붙어있었고, 현지인들은 책을 읽거나 신문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푸른 녹지위에 소들이 띄엄띄엄 풀을 뜯었고, 기차는 알프스 산자락 근처를 지나는 것 같았다.

 

Basel 시내와 기차로 30분 떨어져 있는 곳에, 내가 하룻밤 Couch surfing을 하기로 한 집으로 갔다. 엄청 큰 개가 있었다. 그 개가 짓는 소리에 간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개가 곧 나에게 다가와서 손을 햩고 치대기 시작했다. 26살의 젊은 두 애기 아빠는, 이 개가 처음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짓지 않고(분명 몇번 짓었다!) 다가와서 친하게 구는 것은 처음본다고 했다.

 

나는 '인연'을 설명하면서 전생에 만났었나며, 개가 더 이상 짓지 않음을 내심 감사하며 이야기했다.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티도 좀 내면서. 하지만 개의 환대는 정말이지 왠지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내가 사온 재료 일부로 그린 카레를 해서 주인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 주인은 나에게 아기 낳을 계획이 없냐고 물었다. 자기는 아마추어 축구선수였는데, 두 아이를 낳고 축구를 줄였다고 했다. 나는 그 젊고 잘 생긴 애기아빠 앞에서, 출산율이 떨어지고 어쩌고 하면서, 식은 땀을 흘리며 횡설수설 했던 것 같다.

 

밤이 깊었고, 나는 아기방에서 잠이들고, 주인가족은 2층에서 자는 것 같았다.

 

아침이 되었다. 주인내외는 잘 달리려면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며, 빵을 많이도 주었다. 주인내외, 유모차 한대, 아장아장 걷는 첫째 아이와 동네를 한바퀴 산책하고 주인은 나를 기차역으로 태워주었다. 버스가 두 시간에 한대 정도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프랑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Basel 시내로 향했다. 내일은 21km를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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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를 전후로

2012/05/01 16:22 from 분류없음

1. 총파업 메이데이 전날, 겨울이불 겉청 3채를 세탁기에 돌려 널었다. 안 솜 2개도 옥상에 말렸다. 원래는 약 이주일에 한번씩 물세탁과 햇빛세탁을 해주는데, 논문 덕에 겨울은 그냥 넘어갔다. 겨울 이불 빨았는데, 여름이 왔네.

 

2. 오빠의 이불을 빨면서, 오빠에게 이불세탁법을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만' 했다. 정희진씨가 남자로 태어나면 좋겠는 두 가지 이유중 하나로, 여자로 태어나 온갖 구질한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게 억울하다 했었다.  어렷을 적부터 어머니가 큰 이불의 겉감을 솜에 입힐때, 이불의 한쪽을 잡고 있는 것은 나였다. 그리고 엄마의 시침질을 보던 것도 나였다. 그래서 '이불을 세탁하고, 계절마다 정리한다'는 개념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자취생활 12년째, 계절별로 옷정리하고 이불을 빠는 것은 제법 익숙해졌다. 햇빛에 뽀송하게 말린 솜 위에, 향긋한 겉청을 입힌 이불 위에서 잠 드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오빠의 지저분한 이불청을 못보아 넘기는 것도 성별화된 오지랍. 오빠가 이불 빨래 세계의 기쁨을 알아야 하는데...

 

3. 5월 1일, 총파업 본 날. 친구들은 총파업 시위에 갔는데, 나는 유난히 일찍 연구실에 왔고, 열심히??? 논문쓰고 있다. 잉여생활을 너무 오래해서 그런지, 갑-을-병-정의 세계가 그립기까지? 하다. 사업을 할 뱃뽀와 머리가 없는 관계로 '을'로 살아갈 확률이 높은데, '을'을 착취하지 않는 한국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건... 너무 심한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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